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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veller] Toscana Tasty Road: (2) 볼테라의 시골밥상

고대 성벽 도시 볼테라로 향하던 길이었다. 새하얀 양떼가 노닐고 짙푸른 올리브 나무가 흐드러진 한 언덕에 멈춰 섰다. 이곳에서 토스카나의 첫술을 떴다.

110728 sony_409s.jpg나는 여행지에서의 첫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낯선 공간을 배회하던 이방인 이 처음으로 그 도시 또는 문화와 친숙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혀끝만큼 상대를 섬세 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기관이 또 있을까. 달고 슴슴하고 시리고 부드럽고 짜릿하고. 음식을 먹는 동안 감성은 더욱 풍부해진다. 객지의 낯선 풍경이 서먹해서 또는 예약했던 호텔이 불편해서 등등의 이유로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도 스르르 풀린다. 비로소 그 도 시와 대화할 준비가 된다.

토스카나에서의 첫 식사는 피렌체에서 피사를 거쳐 고대의 성곽 도시인 볼테라로 향하는 길에 이루어졌다.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 나는 근사한 점심식사를 계획했다. 여기서 ‘근사한’이란 ‘토스카나의 첫인상을 깊게 새겨 넣을 수 있는’이라는 뜻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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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에서 남동쪽으로 30분쯤을 달렸을까. 푸른 벌판만 펼쳐지던 밋밋한 차창 밖 풍경이 울룩불룩한 구릉지대로 바뀌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언덕은 솔직하고 거친 이탈리아인과 같은 민낯을 드러냈다. 이제 갓 목초를 베어냈는지 까슬까슬한 촉감이 느껴지는 언덕에선 진한 흙 냄새가 풍겨 나왔다. 초목이 무성한 벌판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고개를 파묻은 양과 염소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그리고 주황빛 기와를 얹은 시골 농가에선 안주인이 빨래는 널고 있었다. 이 풍경을 맛으로 음미하고 싶었다. 그래서 향한 곳이 파토리아 리쉐토Fattoria Lischeto, 즉 리쉐토 농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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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쉐토 농장은 볼테라 도심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한 전통 농가다. 1.5제곱킬로미터의 넓은 대지에 1000여 마리의 양을 기르며 오가닉 우유와 치즈, 엑스트 라 베르지네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고 있다. 치즈와 올리브 오일은 이 지역에서 최고라고할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그래서 농장 옆에 이들을 맛볼 수 있는 타베르나(Taberna, 서민 적인 레스토랑)가 마련되어 있다.

타베르나에 도착하니 점심 식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살루미와 치즈 플 래터, 얇게 저민 양배추와 버섯을 올린 주키니 카르파초, 리코타 치즈를 넣어 만든 리볼 리타ribollita, 토스카나 지역의 전통 곡물 파로farro로 만든 폴렌타polenta 등 6가지 음식. 여기에 만든 이도 포도 품종도 표시 되어 있지 않은 시골 와인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테이블웨어를 보며 신이 내린 이탈리아인들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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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패션 감각까지 갖춘 농장의 오너 시뇨르 지오반니는 이탈리아 신사의 미 덕인윙크를 날리며 이 멋진 점심 식탁을 소개 했다. “파로로 만든 죽인 폴렌타는 고대로 마 시절부터 먹어왔던 전통 음식이에요. 서민과 군인들이 먹던 간편식이었는데 최근 ‘건 강식’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죠.
토스카나 서민의 또 다른 대표 메뉴는 리볼리타예요. ‘다시 끓였다’는 뜻을 지닌 수프인데 리코타 치즈를 넣고 만드니 꼭 퐁뒤 같죠?” 그는 송로버섯향을 첨가한 리코타 치즈, 저장 시기가 달라 색과 질감도 다른 페코리노 치즈의 맛과 여기에 어울리는 음식, 와인에 대한 찬사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입 안은 물론 머릿속까지 황홀하게 만드는 맛의 향연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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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와작별인사를나눈뒤부른배와황홀한만족감을가득안고볼테라로향했다. 볼테라는 로마인과 함께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에트루리아인들이 세운 견고한 성벽 도시다. 이곳에서는 아리랑 고개보다 더 아슬아슬한 굽잇길 대신 토스카나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한눈에 감상하는 행운을 얻는다.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볼테라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토스카나 전 통 음식을 먹여주겠다는 이를 만났다. 게다가 그는 볼테라 최고의 셰프로 불리는 제누이 노 델 두카Genuino Del Duca. 우아한 원형 테이블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레스 토랑 ‘델두카’에서 그가 요리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토마토 죽’ 이었다. “파파 알 포모 도로Pappa al Pomodoro예요. 냄비에 얇게 썬 마른 빵과 삶은 후 껍질 벗긴 토마토를 넣고 오랫동안 끓여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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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다이어트 메뉴로 소개되어 관심을 끌었던 음식이다. “이유식 처럼 아주 어렸을 적 부터 먹는 음식이에요. 그래서 파파 알 포모도로를 먹을 때면 어머니 의 부엌이 떠올라요.” 한참을 끓인 파파 알 포모도로 위에 싱싱한 바질과 올리브 오일이  올려졌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그윽한 토마토 향기와 올리브 오일 맛이 오래도록  퍼진다. 소박하고 다정한 토스카나의 첫맛은 볼테라의 성벽 위에 걸린 붉은 노을보다 깊 고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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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리아 리쉐토 Fattoria Lischeto
파토리아 리쉐토의 오가닉 치즈와 올리브 오일은 유럽은 물론 미국의 고급 비오 마켓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낭만적인 토스카나의 자연과 농가를 체험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을 위해 팜하우스를 렌털해준다.
ADD Località strada provinciale del monte Volterrano, Volterra
TEL +39-588-30414
WEB www.agrilischeto.com

델두카 Del Duca
델 두카는 볼테라 및 토스카나 지역의 음식을 선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질좋은 유기농 로컬 재료만 고집할 뿐 아니라 직접 포카치아, 올리브 오일과 와인을 만들 정도로 깐깐하다.
ADD Via di Castello 2, 56048 Volterra
TEL +39-588-81510
WEB

the Traveller 2011. September issue.
Writer & Photographer | Dahee Seo
Cooperation | Italia Tou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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