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토스카나를 여행한 후 가장 오랜 여운을 남긴 두 글자. 토스카나 인들이 평범한 일상에 즐겨먹는 파스타로, 그 참맛을 온천 도시 키안치아노 테르메Chianciano Terme에서 알게 되었다.
지난 3월,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파스타 예찬’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파스타, 그중에서도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에 바짝 말린 건파스타의 고향을 여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손 엔 담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파스타를 볶는 소문난 트라토리아(Trattoria, 이탈리아 인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대중적인 레스토랑을 이렇게 부른다)에서부터 미슐랭 스타 레스 토랑까지, 야심 차게 내놓은 세콘도피아토(이탈리아 정찬의 메인 코스)보다도 더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 바로 ‘파스타’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파스타는 정말 ‘맛있다’. 청담동에 위치한 최고급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3만원도 넘는가격에 내놓는 파스타도 흉내내지 못하는 맛의 비결은 뭘까? 건파스타와 생면 파스타 그리고 스파게티, 링귀니, 펜네, 페투 치니, 파파르델레, 푸실리, 라비올리 등 종류의 차이는 둘째 문제다(일반 슈퍼마켓에만 가도 100종이 넘는 다니까).
무엇보다 태생의 차이가 가장 크다. 파스타 반죽에 쓰이는 물, 달걀, 밀가루 그리고 요리할 때 들어가는 토마토, 바질, 올리브 오일은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순간 맛이 변한다. 특히 밀가루의 경우 우리 것과는 다른 경질의 소맥을 사용하는데, 이는 파스타를 더욱 탄력있게 만들 뿐 아니라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강한 아로마를 뿜어내는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은 또 어떠한가. 시칠리아의 올리브 오일 명가 라비다Ravida의 엑스트라 베르지네 올리브 오일을 시음해보곤 “난 지금까지 올리브 오일이 아닌 ‘오일’만 먹었던 거야?”라는 한탄을 내뱉었다.
토스카나에서 슬로 푸드 운동을 이끄는 피틸리아노에서 강도 높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피렌체가 있는 북쪽으로 1시간 30분쯤 달려 키안치아노 테르메에 들렀다. 키안치아노 테르메는 토스카나 지방의 유서 깊은 온천 도시다. 로마인들은 이곳에 화려한 별장을 두고 온천욕을 즐겼다. 온천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구시가로 향했다. 문득,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싶었다. 전날 운전사가 말한 토스카나 남쪽 지방의 특산 파스타 이름이 계속 귀를 맴돌던 차였다.
파스타의 이름은 피치Pici. 피치는 시에나 지역의 전통 파스타로, 생면으로 만드는 게 진짜다. 피치는 만드는 방법이 유별난데, 반죽을 얇게 밀어 칼로 잘라내는 일반적인 생면 제조법과 달리 치댄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이를 손바닥으로 밀어 면을 뽑는다. 맛있는 피치를 먹기 위해 수소문 끝에 찾은 트라토리아 라 토레타Trattoria la Torretta는 키안치아노 테르메의 구시가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서는 예상외로 모던한 모습 에 의심의 눈초리부터 치켜세웠다. 젊은 오너인 안드레아가 메뉴를 건넸다.
“토스카나에 서가장맛있는피치주세요.”
당돌한 동양 여자의 주문에 그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메뉴는 딱 2가지예요.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올린 알리오 올리오 아니면 토마토소스에 마늘을 올린 알리오 포모도로. 둘 다 수타면을 쓰죠.” 마음에 들었다. 부가 적인재료없이 기본 만으로 승부를 건다는 건 자신있다는가장 명쾌한 증거다. ‘장맛을 보면그 집 음식 솜씨를 알 수 있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파스타의 기본소스가 되는 토마토소스와 올리브 오일, 마늘만으로 어떤 파스타를 내올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10분쯤 기다려 드디어 피치를 맛봤다. 난 그날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우’, ‘아’, ‘음’ 과같은감탄사를 곁들여 1시간도 더 떠들 수 있다.
“파스타를 받았을 때 면 위에 촉촉히 남겨진 윤기를 보고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걸 느꼈어.통통한면발은 도쿄 롯폰기에서 맛본 장인의 야키소바 같았지. 아니, 그것보다는 더 차진 면발인데, 손칼국수와 우동의 중간쯤이랄까. 포크로 오동통한 면발을 집어 입에 넣으면 입술과 혀, 입천장을 휘감는 면발의 촉감에 온몸이 녹아 내릴 정도야. 면 자체의 맛은 달걀을 넣지 않아 아주 순결해. 올리 브 오일과 토마토소스만으로도 감미로웠지. 내 인생에 최고의 파스타였다고!”
트라토리아 라토레타 TrattorialaTorretta
트라토리아 라토레타는 클래식한 중세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모던한 감각의 레스토랑이다. 전통적인 레시피를 세련되면서도 캐주얼한 스타일로 선보인다. 화창한 오후 테라스에서의 점심식사도 좋지만 감각적인 라운지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즐기는 것 또한 현명한 선택일 듯.
ADD Via Dante, 2, 53042 Chianciano Terme
TEL +39-578-3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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