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를리츠 & 로스톡 국경도시의 크리스마스
유럽 중심부에 자리 잡은 독일은 참 다양한 이웃을 뒀다.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 무려 9개국이나 된다. 그래서 독일은 기차 여행을 하기 참 좋은 나라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이웃 국가를 여행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지닌 국경 근교도시 여행도 흥미롭다. 그래서 베를린의 동쪽 끝과 북쪽 끝에 있는 도시를 하나씩 골라 이들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기로 했다.
베를린에서 폴란드를 바라보고 동쪽 끝으로 달려 닿은 도시는 괴를리츠Görlitz다. 이 생경한 도시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2006년도 뉴스가 하나 뜬다. ‘니콜라스 케이지, 한국인 아내 위해 독일 괴를리츠의 성 매입.’ 최근 관련 뉴스로 ‘케서방 파산 위기, 가정 폭력까지’라는 기사가 뜨니, 그는 어쩌면 괴를리츠의 성을 되팔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괴를리츠를 알게 된 것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부동산 활동을 담은 외국의 여행 잡지 기사 때문이었다.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지방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이세 강을 국경으로 서쪽은 독일의 괴를리츠, 동쪽은 폴란드의 즈고르제레츠Zgorzelec로 나뉜 비운의 도시.’ 걸어서 고작 2분이 채 될까 한 작은 다리를 넘으면 전혀 다른 도시가 펼쳐진다는 괴를리츠에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난 괴를리츠는 예상보다도 훨씬 괴이했다. 일요일에 찾은 탓도 있지만, 인구 5만 명의 소도시가 이렇게 적막할 줄 이야. 다리 건너 즈고르제레츠는 더했다. 언덕 위에 세워진 닭장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어린아이 뛰노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이 황량했다. 다행히 다시 괴를리츠로 돌아와 플라이셔 거리 Fleischer Str.로 들어서는 순간 온기가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마켓이었다. 예상대로 이곳에선 폴란드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블루와 화이트의 선명한 프린트가 돋보이는 폴란드 그릇과 세밀한 손맛이 담긴 자수 제품이 눈에 띄었다. 또 진저브레드에 마지팬, 아몬드, 건포도, 다크 초콜릿을 넣고 구운 슐레지엔 지방의 전통 파이 ‘리그니처 봄벤’은 따뜻한 글뤼바인과 함께 추운 겨울밤을 달콤하게 보듬어주었다.
마지막 여정은 북쪽 끝, 로스토크Rostock였다. 로스토크 는 독일의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Mecklenburg- Vorpommern 주에서 총면적 181.44제곱킬로미터의 가장 큰 도시로 발트해에 면해 있다. 국경을 직접 걸치진 않아도 바다를 건너면 덴마크의 해안 도시 게세르Gedser와 맞닿는 위치다.
역을 나서자 ‘북독’의 험상궂은 날씨가 맞이한다. 추적추적 쏟아지는 겨울비를 헤치고 구 시가지까지 걷기를 10분. 신발이 몽땅 젖어버렸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슈타인 문에 들어서 로스토크의 속살을 보는 순간, 그 동화같은 풍경에 반해 버렸다. 견고한 생김새의 붉은 벽돌 건물과 뾰족히 솟아오른 첨 탑이 전형적인 독일 북부의 정취를, 중심가인 크뢰펠린 거리 Kroepeliner Str.에 늘어선 아기자기한 파사드의 건물이 화사하고 생기 있는 표정을 짓는다. 여기에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마 켓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보다 더 환상적이다. 현란 하게 돌아가는 회전목마에선 사츠키와 메이가 깔깔댈 것만 같고 성모 교회 앞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장신구인 피라미드 위로 마녀 배달부 키키가 날아올 것만 같다. 30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소박한 거리를 걸으며 로스토크만의 특별한 공예품이 무엇인지, 예민한 혀끝을 감동시킬 별미는 있는지 따지지 않았다. 로스토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그 자체만으로 한 겨울밤의 꿈을 안겨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