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잘츠부르크 여행
융프라우’ ‘마터호른’ 등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에 등장하는 산봉우리들이 스위스에 있어서일까? ‘알프스’ 하면 여전히 스위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웅장한 알프스산맥은 프랑스부터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대륙 중심부를 관통해 총 8개 나라와 맞닿아 있다. 그 중에서도 합스부르크 왕가를 비롯해 유럽 귀족의 애정을 받은 오스트리아 알프스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화려한 겨울 휴양지다. 본격적인 이 여정의 기점은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리는 우아한 취향으로 가득한 도시, 잘츠부르크의 중앙역에서 고속 열차에 몸을 싣는다. 목적지는 기차로 약 1시간30분거리에 있 는바드 가슈타인 역Bad Gastein Bahnhof. 유서 깊은 겨울 휴양지인 가슈타인 계곡의 관문과도 같은 역에 내리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나를 겨울의 한복판으로 데려갔다. 고풍스러운 역 건물 앞에 알록달록한 복장의 스키어, 스노보더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광경이라니! “역에서 곧장 스키장 정상으로 향하는 곤돌라를 탈 수 있거든요.” 역무원이 귀띔했다.
첫인상처럼 가슈타인 계곡은 소문난 스키 여행지다. 전 세계 스키 팬들이 알파인 스키의 본고장을 찾아 이곳에 모인다. “알파인 스키는 험준한 알프스에서 탄생했어. 가파른 경사면을 빠르 게 활강하고 촘촘히 늘어선 장애물 사이를 재빨리 회전하며 통과하는 기술이 핵심이지. 이곳에서 스키를 타면 알파인 스키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을 거야.” 가슈타인 계곡 여행을 추천한 오 스트리아 친구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스키장인 ‘슐로스암-앙거탈-스투브너코겔Schlossalm-Angertal- Stubnerkogel’ 입구에 서서 벅찬 가슴을 진정시켰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방송사 주최 스키 캠프에 매년 참가할 정도로 스키 러버였다. 그때 만든 버킷 리스트에 ‘일생에 꼭 한 번 알프스에서 스키 타기’를 올려 뒀는데, 꿈이 이뤄지다니! 심지어 그 과정은 험난하지도 않았다. ‘스키가슈타인(www.skigastein.com)’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스키장 시설과 프로그램, 숙소와 교통편, 렌털 숍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약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까.
‘슐로스암-앙거탈-스투브너코겔(스키장을 떠날 때까지 이 이름을 완벽하게 외우지 못했다)’은 해발 860~230m사이에 조성된 스키장이다. 초급자부터 고급반까지 모든 수준의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을 만족시키는 30개의 슬로프, 20개의 리프트와 곤돌라가 마련된 알프스 스키 천국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분이 어떠냐고? 먼저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는 알프스산맥의 자태가 진심 어린 경탄을 자아낸다. 그런 감동을 마음에 품은 채 스키를 신은 탐험가가 되어 대자연의 품을 구석구석 여행하면 된다. 도통 스키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총 4개의 스키장이 자리한 가슈타인 계곡은 겨울 산행을 위해 찾아도 좋은 곳이다. 스키를 신고 하이킹하는 프로그램과, 눈 위에서 걷는 데 적합한 스노 슈Snow Shoe 투어 등 각기 다른 속도로 알프스를 즐길 수 있다.
많고 많은 오스트리아의 스키 휴양지 중에 특별히 가슈타인 계곡을 찾은 또다른 이유를 밝히라면 바로 온천이다. 여기에 팁 하나를 전하면, 독일어로 ‘바드Bad’는 온천을 의미한다. 즉, 독일어권 지명에 ‘바드’가 들어가면 십중팔구 온천이 있다는 것! 가슈타인 계곡에 걸쳐진 두 동네, 바드 가슈타인과 바드 호프가슈타인Bad Hofgastein 중 좀 더 유명한 곳은 19세기에 유럽 왕족과 유명인사들이 찾는 고급 휴양지로 명성을 떨친 바드 가슈타인 쪽이다.
퀴리 부인과 여러 과학자들이 이곳 온천에서 라듐 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뿐인가. 각종 무기물과 광물질이 녹아 있어 치료 효능이 탁월한 라듐 테라피를 만끽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슈베르트는 바드 가슈타인에서 휴가를 보낸 후 ‘가슈타이너 피아노소나타 D장조, D850’을 작곡했다. 줄줄이 쏟아지는 명사들의 이름만큼이나 바드 가슈타인은 화려하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리게 하는 벨에포크 시대의 건축물들이 해발 1000m 높이의 골짜기에 층층이자리 잡은 풍경이라니! 건물을 따라 앞으로는힘찬 폭포수가 쏟아지고 뒤로는 알프스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전망은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낸다.
중앙역 근처에 자리한 스파, 펠젠테르메Felsentherme는 근사한 풍광과 고급스러운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안과 밖의 온천 수영장을 비롯 7개의 사우나, 피트니스 시설과 휴식 공간을 오가며 우아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바드 호프가슈타인도 이에 버금가는 명소로 떠올랐다. 약3만2000m2 규모의 공간에 야외 수영장과 실내 수영장, 10여 개의 사우나 룸, 트리트먼트 룸을 갖추고 있으며 루프톱 테라스, 누드 가든까지 세계적인 규모와 최신식 시설의 스파 센터 알펜테르메 가슈타인Alpentherme Gastein이 이곳에 있다.
마침 ‘누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근방에서 처음으로 온천과 사우나를 이용한다면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탈의실을 제외하곤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거다. 특히 사우나나 중간중간 비치된 샤워 시설을 이용할 경우 이곳의 남녀는 스스럼없이 알몸이 된다. 수줍음에 타월로 몸을 가려도 상관없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것. 공공 기물에 내 신체가 직접 닿지 않도록, 타월 한 장을 추가로 챙겨 몸이 닿는 부분에 깔아줘야 하는 게 예의다. 같은 이유로 맨발이 아닌 슬리퍼, 플립플롭 등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알펜테르메의 경우 세계 각지에서 찾는 여행자들 이 많다 보니 여성 전용 사우나와 휴식 공간을 구비해 놓았다. 하지만 이왕이면 주변의 시선과 부끄러움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자연인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온종일 알프스를 미끄러져 내린 뒤, 밤에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맑 고 찬 공기와 따뜻한 온천을 음미하는 나날이라면 도전해볼 만 한 일 아닐까?
Elle 2019 January issue.
Writer & Photographer | Dahee Seo
Editor | Maroo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