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 Culture Media

[Vogue Korea] LOCAL BOUNCE 베를린 클럽 문화

 

NCG 190720 ab.jpg
클럽 어바웃 블랭크 ©Bastian Bochinski

베를린을 소개하는 책자나 웹사이트, 유튜브 채널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 다. 베를린의 전설적 클럽인 베르크하인(Berghain)이다. 클러빙에 크게 관심 없 는 사람이라도 호기심이 솟아날 만한 곳이다. 베르크하인을 소개하는 자극적 타 이틀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베르크하인에 입성하는 법’ 이라는 기사를 실을 정도로 까다로운 입장 방침이 화제다. 사실 방침이랄 것도 없다. 문지기의 마음에 달려있으니까. 내 맘도 잘모르는데 남의 맘을 어찌 알 수 있나. 누구도 정확한 기준을 몰라 ‘카더라 통신’만 난무한다. 그래도 입장 경력이 출 중한 지인들의 조언에 따르면 화려한 복장은 금물, 차라리 ‘덜’ 입는 게 낫다. 게이 클럽으로 시작한 탓에 LGBT나 남자가 유리하고 관광객처럼 보이면 안 되며 여럿이 전우애를 다지기보단 나 홀로 클러버가 환영 받는다. 혹자는 밤중에 몇 시간씩 기다리지 말고 일요일 아침 식사나 브런치를 즐긴 후 찾길 권한다. “뭐? 아침부터 클럽에 간다고?” 다들 놀라곤 하는데, 좋은 음악을 즐기는데 밤낮을 가릴 이유가 있나? 통과율을 좀더 높이고 싶다면 베르크하인의 악명 높은 문지기이자 사진가 인 스벤 마르쿠아르트(Sven Marquardt)의 작품을 찾아 그의 취향을 저격해보 는 것도 방법이다.

스크린샷 2019-07-27 오전 9.16.52.png
스벤 마르쿠아르트의 인스타그햄

이렇게 공들여 베르크하인에 가야 할 이유는? 사실 베르크하인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히 나뉜다. 언급했듯, 베르크하인의 전신은 90년대 게이 페티시 클럽으로 유명했던 스낙스(Snax)다. 스낙스는 파티 형식으로 베를린의 여러 곳에서 열렸는데 98년 구동독 지역의 기차정비소였던 공장에 자리를 잡고 이름을 오스트구트(Ostgut) 클럽으로 변경, 게이뿐 아니라 일반 클러버에게도 문을 열었다. 오스트구트는 베를린에서 가장 잘나가는 클럽 중 하나가 됐지만 베를린시의 재개발 정책 때문에 2004년 다시 이사했다. 베를린 남쪽의 크로이츠‘베르크’와 동쪽의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 사이의 대형 발전소 건물로, 두 지역명을 딴 이름 ‘베르크하인’이란 간판을 새로 달았다. 15년 후 세계 1위 클럽이란 명성을 얻고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여전히 게이 클럽의 성향이 강하다. 가터벨트, 가죽이나 라텍스 소재의 도발적 소품이나 의상으로 연출한 사람들, 한쪽에서 포르노셉슈얼 파티가 열리는 것이 불편하다면 베르크 하인을 찾지 않는 게 좋다.

“베르크하인은 베를린이라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베르크하인 앞에서 만 난 한 베를리너가 말했다. “클럽 안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되죠. 모든 관념과 편견,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유, 다양성, 개방성, 창조성 등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맞닥뜨리게 돼요.”

NCG 190720 bg.jpg

베르크하인 외에 무려 280여 개 클럽이 산재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발달엔 80~90년대 베를린 혼돈의 역사가 큰 몫을 했다. 당시 역사적 상황을 살짝 설명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수도였던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됐다. 그러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통일을 맞았다. 통독 후 베를린엔 주인 없이 버려진 건물이 넘쳐났다. 장벽 근처 동독 정부나 군사 기관, 벙커가 들어선 곳이 그랬다. 이 빈 공간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베를린 중심이자 구 동독 지역이었던 미테에는 불법 점거 콘서트, 테크노 파티가 성행했다. 또 장벽이 늘어선 빌헬름 거리와 포츠다머 플라츠에는 에베르크(E-Werk), 데어 붕커(Der Bunker), 트레조(Tresor) 같은 전설적 클럽이 생겼다. 흥미로운 것은 테크노 음악이 통일 후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통합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테크노 음악의 역사는 독일에서 시작됐어요. 70년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를 통해 알려졌고 80년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죠.” 베를린 클럽 신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클럽 커미션의 대표 마르크 볼라베가 설명했다. “분단 후 통일까지 40여 년이었지만, 동서독의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간극은 꽤 컸어요. 이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 예술과 테크노 음악이었죠. 테크노 음악을 통해 한자리에 모이고 순수한 감정을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었으니까요.”
테크노를 포함한 일렉트로닉 음악은 베를리너에게 일상의 음악이다. 레스토랑과 카페는 물론 택시, 수영장, 유람선, 벼룩시장, 미술관 전시 오프닝, 온 가족이 참여하는 거리 축제 등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부터 노인까지 듣고 즐긴다. 이런 베를리너에게 클럽은 그저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만은 아니다. 노르웨이 출신 아티스트 얀 크리스텐센은 이렇게 말한다. “클럽은 음악,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테크놀로지 등이 어우러진 공간이잖아요. 이곳에서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게 되죠. 베를린엔 실험적인 클럽이 많거든요.” 미술이나 영화, 패션 등 문화 예술 행사 후 디제잉 파티를 늘 준비하는 이유다.

NCG 190720 cv.jpg

NCG 190720 Sage 03.jpg

클럽 형태 또한 다양하다. 특히 여름이면 슈프레 강변에 자리한 슈트란트 바와 클럽이 인기다. 이런 클럽은 주말 내내 쉬지 않고 열어 금요일 밤에 입장해 일요일 밤에 나온다는 클러버들이 있을 정도다. 예술 전시, 벼룩시장을 운영하고 맛있는 스트리트 푸드를 맛볼 수 있는 클럽도 있다. 테크노 음악뿐 아니라 스윙, 살사, 탱고, 왈츠 등 다양한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베를린 퓌어 알레(Berlin für Alle, 모두를 위한 베를린)!’ 도시가 지향하는 개방성과 다양성만큼, 베를린의 클럽은 모두를 위한다. 당신에게 맞는 클럽만 찾으면 된다.

Vogue Korea 2019 JULY
Writer & Photographer | Dahee Seo
Photo Credit | Bastian Bochinski(About Blank)
Editor | Narang Ki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