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맞아 독일 전역이 들썩이고 있다. 베를린을 주축으로 바이마르, 데사우까지 바우하우스의 역사와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계기반에 ‘1930년, 데사우’를 입력할 거예요. 요즘 대학교는 한 명의 스타 건축가를 교수로 영입하기도 어렵잖아요. 이 시절 바우하우스Bauhaus는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마르셀 브로이어, 미스 반데어로에 같은 초특급 교수진이 포진해 있었어요. 그야말로 드림팀이죠. 바우하우스 학생이 될 수 있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자 바우하우스 투어 가이드로 활약하는 프랑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 중부 튀 링겐주의 주도 바이마르에 설립한 조형 학교다. 설립자이자 초대교장인 베를린 출신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전쟁과 경제 공항으로 피폐해진 삶을 개선 하며 사회 개혁에 앞장섰다. 바우하우스를 통해 공예, 회화, 조각, 디자인 등 예술과 기술을 통합한 건축을 지향했다. 화려한 등장과 달리 바우하우스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바이마르에 뿌리를 내렸으나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1925년 데사우로, 1932년 베를린으로 거점을 옮겼고, 1933년에는 결국 나치의 탄압을 받아 폐교했다. 올해는 바우하우스가 개교 100주년을 맞는 해다. 바우하우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이름도 낯선 도시에 세운, 고작 14년 역사의 교육기관에 전 세계가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베를린에 남아 있는 바우하우스의 궤적을 좇았다.
“바우하우스의 3대 교장이던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는 ‘바우하우스가 교육기관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념’이라고 말했죠.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건축, 디자인 역사에서 가 장 크고 중요한 챕터를 차지하니까요.”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 축과 디자인 관련 글을 쓰는 프랑크는 바우하우스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 그는 이번 투어에서 베를린의 남다른 바우하우스 코스를 소개하겠다고 자처했다. 바우하우스가 만든 삶의 풍경과 모더니즘 건축에 초점을 맞춘 것.
“19세기 이후 대도시로 부상한 베를린은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렸어요. 게다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되었고요.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대대적인 건축 계획이 필요했어요. 시민을 위한 주택도, 도시의 위상 을 다시 세울 최신식 건축물도요.”
그렇게 탄생한, 바우하우스 시절 베를린의 대표 건축물은 ‘주택단지’다. 20세기 초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로 건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대형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기억해야 할 이름은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와 마르틴 바그너Martin Wagner다. 이들은 베를린 곳곳에 기념비적 주택단지를 지었고, 그중 몇몇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먼저 두사람이 참여한 프로젝트를 보러갔다. 베를린 남쪽 노이쾰른에 위치한 ‘후파이젠지들룽Hufeisensiedlung’, 번역하면 ‘말발굽 주택단지’ 다. 1925년부터 1930년까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공공 지원 주택 프로젝 트의 일환으로 지었으며, 약 2000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독특한 이름은 말발굽 모양의 중앙 빌딩에서 본뜬 것이다.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은 디자인의 사회성을 강조했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민중을 위한 것이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했어요. 브루노 타우트와 마르틴 바그너는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에게 빛과 공기 그리고 자연 속 주거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죠.” 두 사람은 욕실과 정원이 딸린 저렴한 주택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도심을 벗어나 건축 가능한 녹지를 찾고, 평면적 설계를 통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에 치중했다. “하지만 전혀 단조롭지 않아요. 건물이나 거리마다 문, 창틀, 벽면 등에 강렬한 컬러와 각기 다른 패턴을 첨가했죠. 이는 브루노 타우트만의 특별한 방식이기도 하고요.”
비슷한 사례를 베를린 남서쪽 첼렌도르프의 소나무 숲속에서도 발견했다. ‘톰 아저 씨 오두막’이라는 이름의 ‘옹켈 톰스 휘테Onkel Toms Hütte’다. 정식 명칭은 ‘첼렌 도르프 숲 주택단지’인데, 근처에 있던 유명 카페의 이름이 별칭이 되었다. 브루노 타우트는 후파이젠지들룽과 거의 같은 시기에 옹켈 톰스 휘테를 지었다. 무엇보다 조 경에 힘을 실었다. 소나무를 그대로 살리는 디자인을 고민했고, 모든 세대가 숲과 정 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브루노 타우트의 특징인 컬러 파사드에 적용한 레 드, 블루, 옐로 등 알록달록한 색채가 푸른 숲과 잘 어우러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또 다른 주택단지를 찾았다. 이번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마르틴 바그너와 세 건축가가 함께한 ‘바이세 슈타트Weiße Stadt’, 일명 ‘백색 도시’다. 바이세 슈타트가 위치한 곳은 베를린 북서쪽 라이니켄도르프 Reinickendorf다. 널찍한 아로저 대로Aroser allee를 따라 이름 그대로 흰색 건물이 쭉 늘어서 있다.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건축물과 단지는 녹지와 테라스를 통해 여유를 품었다. 이전 주택에 비해 확연히 눈에 띄진 않지만 입구와 창틀, 내부 벽면, 옥상 등에 컬러를 입혀 생기를 더했다.
이 밖에도 브루노 타우트의 또 다른 걸작 가르텐슈타트 팔켄베르크Gartenstadt Falkenberg, 그로피우스가 참여한 지멘스슈타트 집합 주택단지Großsiedlung Siemensstadt 등을 통해 바우하우스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종종 가이 드 투어도 진행하는데, 베를린 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berlin.de/en)에 방문하고 싶은 건축물을 검색하면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Noblesse Korea 2019. August issue.
Editor | Jiyoung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