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바꾸다 계정 정지 당한 사연
오랫동안 글을 쓰는 일을 미뤄왔습니다. 해외에서 프리랜서로의 삶이 그 이름처럼 ‘프리’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혹은 내가 사는 곳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기에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잘하는 ‘여행’에 대해 쓰려고 했어요. 올해 초였죠. 예상했겠지만, 코로나팬데믹으로 인해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어쨌건, 올해 진행했던 큰 프로젝트는 끝마쳤고 현재 살고 있는 베를린은 라이트 록다운을 거쳐 하드 록다운에 돌입했습니다. 모처럼 만의 휴가인데 여행은 커녕 집 밖도 나가지 못하니 뭘할까 고심하다, 밀린 숙제를 하기로 결심했죠. ‘그래, 이제 글을 쓰자.’
그래서 쓴 첫번째 글.
<어쩌다, 아직도.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01 나는 왜 베를린에 살게 됐나
그런데 한 편을 쓰곤, 다시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카카오톡 계정을 차단당했거든요.
사건의 발단은 4년만에 존버하던 핸드폰을 바꾸며 시작됐습니다. 드디어 때가 온거죠. 아이폰에 입문하게 한, 아이폰 4, 5 모델을 연상케하는 아이폰 12시리즈. 유투브에서 4가지 모델을 비교 분석한 영상만 수십 개 본 것 같아요. 끝내 결정한 건 아이폰 12미니. 베를린 쿠담거리에 위치한 애플스토어의 예약을 잡고 이틀만에 공수했죠. “딸깍” 하며 한 번에 사르르 벗겨지는 포장 비닐에서부터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박스를 열자 모습을 드러내는 아이폰 12미니 화이트. “아아…너무 예쁘잖아” 마치 딸기 우유를 한 방울 톡 떨어뜨린 듯한 밀키한 화이트 컬러. 그리고 인덕션스럽지 않은 딱 좋은 카메라 구성. 무엇보다도 맘에 쏙 든건 한 손에 착 안기는 크기와 그립감이었죠. 오래오래 함께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랬는데.
3일 만에 다시 애플스토어로 향했습니다. 128GB를 구입했더니 기존 앱만 옮겼을 뿐인데도 고작 13GB가 남더군요. 그래서 256GB로 교환했습니다. 다시 마이그레이션을 통해 동기화하고, 세팅을 마치고 신나서 이것 저것 써보는데, 불편한 점을 발견했어요. 불량으로 잘알려진 액정이나 터치문제가 아니라 ‘사운드’에서요. 다른 모델에 비해 스피커 구멍이 하나 적으니 아무래도 음향 출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죠.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타이핑이나 알람음이 커졌다 작아졌다, 가끔은 안나기도 하고 유달리 크고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거슬렸어요. 그래서 결국 다시 애플스토어를 찾았죠.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단기간에 여러폰으로 접속한 제가 의심스러웠는지 카카오톡이 ‘계정제한’이란 알람을 띄우더라고요. 당황스러웠습니다. 카톡을 통해 한국과 업무 연락 뿐만아니라 모바일뱅킹, 해외 송금도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 가족과 연락하는 거요. 코로나 상황 때문에 거의 매일같이 짧게라도 안부를 묻곤 했는데, 모두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애가 탔죠.
물론 계정인증을 할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국의 핸드폰 번호는 장기 정지시킨 상태니 세 가지 방법 중 ‘이메일’인증을 눌렀어요. 그런데 그 끝은 결국 ‘ARS인증’. 한숨이 나왔습니다. 여러 번의 문의를 거쳐 본인 인증을 시도했지만, 해외 거주할 경우 통신사 가입 서류와 같은 문서를 보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네? 세상 느리고 안되는 게 많은 독일에서 살다보면 반 부처가 되는 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통신사 가입 정보를 요청하기 위해 통신사 로그인을 시도했죠. 통신사 인증을 위해 이제 곧 사라진다는 범용공인인증서까지 발급받아 아이핀 인증에 도전! 하지만 통신사 페이지를 6개월 이상 이용하지 않아 휴면계좌로 전환되어 다시 ARS인증. 하아. 은행처럼 시스템을 통해 해외 거주 인증이 안되는 걸까요?
결국 친구들을 통해 가족과 비상 연락을 하고 부랴부랴 카톡 계정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제가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하는 제한이 며칠간 걸려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 계정 또한 제한당할지도 몰라요. 결국 같은 문제로 전 아이폰12미니를 보내고 12프로를 다시 구입할거거든요.
노크스토어의 예쁜 핸드폰케이스도 샀는데.
그렇습니다. 제 예전 계정은 지금 사용할 수 없어요. 연말이라 이런 저런 연락이 많이 올것 같은데 연락도 없고 보낸 연락 씹는 다고 섭섭해하지 말아주세요. [email protected]으로 절 찾을수 있을거예요.
그리고 이걸 카톡에서 본다면 계정 제한 좀 풀어주세요. 이정도면 내 계정인거 너무도 확인되지 않았나요? 이전 브런치도, 카카오뱅킹도 필요해요. 해외 거주 이용자도, 품어주세요.
그리고 이 모든 해프닝의 중심, 아이폰12미니. 원망지 않을게. 넌 너무 예쁘니까. 돈벌어서 촬영용이나 소품용으로 다시 들일게. 안녕. 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