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청정국가를 꼽자면 스위스가 선두에 설 것이다. 유럽 대륙 중앙에 위치한 스위스는 국토의 75퍼센트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알프스 산맥과 빙하가 만든 영롱한 빛깔의 호수들,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진 숲 등 상상만 해도 가슴 속이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맑고 순수한 자연으로 가득한 스위스라면 환경 오염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기와 수질 수준을 가진 나라다. 미국 예일대에서 2년마다 발표하는 환경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EPI)에서 스위스는 선두를 다툰다(한국은 2020년 발표 결과 세계 180개국 중 28위를 차지).
하지만 스위스 또한 과거 산업화 과정 중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폐해를 입었다. 또 스위스 GDP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 산업은 자연을 훼손했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는 알프스의 빙하를 녹이고 있다. 알프스의 빙하는 유럽 주요 강들의 발원지다. 빙하가 사라짐으로 인해 대형 산사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물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스위스인들에게 자연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또 활용해야 할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기업, 국민들이 똘똘 뭉쳐 친환경 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두 도시를 소개한다.
친환경 모빌리티와 호텔로 즐기는 휴양, 체르마트
체르마트(Zermatt)는 스위스 알프스의 명봉인 마테호른(Matterhorn)의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19세기 중반, 영국인 에드워드 윔퍼를 비롯한 7명의 산악인이 마테호른을 정복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신령한 봉우리의 명성에 전세계 여행객들이 몰려들었고 체르마트는 몸살을 앓게 됐다. 결국 체르마트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했다. 그중 하나는 체르마트를 ‘석유 자동차 없는 마을’로 만드는 것이었다. 1966년, 주민 투표를 통해 소음과 매연을 만드는 석유 자동차 운행은 물론 소유 또한 금지했다. 자동차가 없는 관광지라니! 하지만 체르마트의 주민들은 단호했다. 자동차를 타고 온 여행자들은 마을 밖에 자동차를 두고 셔틀 버스를 타고 입장이 가능했다. 석유 자동차의 빈자리는 ‘이모빌리티’가 채웠다. 체르마트에 최초의 전기 차가 등장한 것은 1947년. 1988년엔 공공 전기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현재는 약 500여대의 전기 버스가 운영되고 택시, 곤돌라, 케이블카 등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체르마트를 여행할 수 있다.
체르마트는 친환경 건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은 친환경 건축물로 여러차례 상을 받은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다. 해발 3883미터에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다. 이 전망대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자가 에너지 공급 및 정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전망대 레스토랑 전면 부에 설치된 태양 에너지 패널은 건물의 난방을, 특별히 설계된 정화 시스템이 하수 처리를 책임진다.
또 체르마트 곳곳 친환경 숙소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산속의 크리스털’이라는 별명을 가진 몬테 로자 휘떼(Monte Rosa Hütte)가 눈길을 끈다. 이 최첨단 산장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회인 ‘스위스 알파인 클럽’과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이 진행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총 6년에 걸쳐 완성된 만큼 스위스 친환경 건축의 기술력 및 미학까지 보여준다. 몬테 로자 휘떼는 태양 전지와 자체 열 발전소를 통해 소모 전력의 90퍼센트 이상을 조달한다.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으며 남는 태양열 에너지는 특별 배터리에 모았다가 흐린 날 사용한다. 방문객들이 뿜어내는 열기 또한 난방에 사용하도록 설계했다. 호텔에 사용되는 물은 녹아 내린 빙하수를 이용한다. 박테리아를 이용한 마이크로 정화 시스템 또한 선구적인 시도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체르마트는 맑고 고운 자연을 되찾고 전세계에 ‘에코 투어리즘’의 모범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취리히
스위스의 수도인 취리히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꼽는 조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곤 한다. 그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삶의 질을 높이는 자연 환경이다. 하지만 이런 취리히도 과거 환경 오염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스위스의 공업 중심지로 성장해온 까닭이다.
취리히는 중세시대부터 북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다. 또 견직물의 대표적 생산지이자 직물 공업으로 번성했다. 19세기 이후엔 수력발전을 이용한 중화학 공업이 크게 발전하며 도시 전체가 공장 지대로 변해버렸다. 맑디 맑던 하천과 호수는 오염되고 푸르른 산과 들 대신 잿빛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가 되었다. 취리히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친건 1980년대 부터였다.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하천을 복구하고 중화학 공장 문제를 해결하는데 취리히 주정부는 물론 전문가, 시민단체, 주민들까지 참여했다. 20여년 후 취리히는 유럽의 대표적인 그린 시티로 거듭났다. 그때부터 쭉 환경을 위한 취리히 시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취리히 시는 시내의 환경적 측면을 전적으로 전담하는 ‘그린 부서(‘Tiefbau- und Entsorgungsdepartement)’를 운영한다. 이 부서는 공공시설 설비, 교통 분야의 계획 및 정책, 쓰레기 처리 및 리사이클링, 자연의 다양성 보전 등을 추진한다. 특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유해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취리히 시는 이미 2008년 주민 투표를 통해 1인당 1년 6000W의 에너지 소비를 2000W로, 6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1톤으로 감축하는 목표를 시정책으로 통과시켰다. 이를 위해 전기를 이용한 난방과 공공교통체계 정비, 친환경 건축에 힘을 쏟고 있다. 쓰레기 및 폐수를 활용해 난방 및 전력을 생산하고, EWZ라 불리는 전기절약펀드를 만들어 발생한 이익을 태양에너지, 친환경 전기제품,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데 투자하는 등 취리시 시의 친환경 정책은 귀감이 된다.
스위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제로’로 선언했다. 각 지역과 주민들의 열정적인 참여를 볼 때 충분히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S-OIL STORY 2021. March issue.
글 | 서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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